기황후는 드라마로도 제작 되기도 했었는데, 고려인 인데도 어떻게 징기스칸이 세운
원나라의 황후가 되어 30년 넘게 원나라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역사적인 관점에서 포스팅 해보려 합니다.
기황후 출생과 공녀 ( ~ 1369)
기황후의 본관은 행주 기씨이며 출생은 정확하지않아 추정으로 1310년쯤으로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아버지는 고려 문신인 기자오 이고, 어머니는 익산이씨로 전서 이행검의 막내딸이다.
형제 자매는 오빠가 기식, 기철, 기원, 기주, 기식이 있으며 자매는 두명이 더 있었으며,
기황후의 인물이 빼어났으며, 언변과 솜씨도 아주 좋았다고 행주 기씨 종친들은 말하고있다.
기황후는 고려인으로 1333년 공녀로 뽑혀 원나라로 가게된다.
몽고는 30여년 동안 고려를 7차례나 처들어와,
고려는 고종 41년에 몽고(원나라)에 무릎을 끊으며 그 이후로 공녀를 요구하며, 그중에서도 동녀(어린)여자를 요구한다.
원나라에서는 고려에 공녀로 140명을 요구하였고 그것이 80년간 지속되었으며 그 횟수로는 50회가 넘었고, 인원으로는 5000명 정도 된다고 학술지에서 말하고있다.
고려는 원나라로갈 공녀를 차출하기위해 '결혼도감' '과부처녀추고별감'이라는 임시 기구를 설치를 하였고, 또한 금혼령을 내려 13 ~ 16세 되는 처녀를 시집을 못가게 하였다.
(공녀로 보내지 않기 위해 고려에서는 조혼풍습이 생겨나 10세 이전에 남 녀를 결혼시키는 것이다)
고려에서는 처음엔 공녀로 가는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었으나, 나중엔 민가를 뒤져서 강제로 원에서 원하는 공녀를 숫자를 채웠고, 역적의 처나 승려의딸, 과부 귀족의 딸까지 가리지 않고 공녀로 원나라에 보내져, 귀족의 첩이나 궁에서 차를 따르거나 기생으로 하녀로 가게되며, 자살을 하는 공녀도 있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고려는 작은 나라지만 장인들의 기술이
중국이보다 뛰어나고
고려 유학자들은
경학에 통달하여
시부에만 치중한
중국의 유학자보다 낫다
< 원사열전 中 >
원나라 황제 원, 순제( 혜종, 1320 ~ 1370)
황제 원 순제의 몽골식 이름은 '토곤 테무르 칸' 11대 황제이다.
원 순제는 11세에 우리나라 대청도에 1년 반쯤 유배생활을 하다가 원 나라로 돌아가 2년으로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원 명종의 태자 토곤테무르가
11세 나이로 대청도에 유배왔다
< 고려사 36권, 충혜왕 원년 >
원나라 공녀 기씨(기황후)
원나라에 공녀로 온 기씨는 원나라 환관 '고용보'에 눈에띄어 궁에서 차를 따르는 직책을 맡겨된다.
환관 '고용보'는 고려인으로 공녀처럼 환관으로 원나라에 가게된것이다.
원나라에서 환관 고용보는 원나라 황후의 재정을 담당하는 초대 원사를 지냈으며,
고려의 충혜왕은 고용보에게 '삼중대광완산군'이라는 작위를 내리며, 고용보에게 잘보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고용보는 원 나라 관리들과 결탁하여, 고려에 온갖 횡포를 일삼으며, 원 나라 관리들보다 고용보가 더 고려를 괴롭혔다고 한다.
(원 나라는 공녀들 뿐만 아니라 고려의 환관들도 많이 요구 했었다. 몽고족인 원 나라는 유목민으로 글과 교양을 잘 모르기 때문에 원 나라의 조직을 쌓기위해 글을아는 고려인 환관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기황후의 원나라 궁중생활
궁에서 차를 따르는 기황후는 총명하여 황제 원 순제의 눈에 들게되며,
그것을 질투한 원 나라 황후 '타나시리'는 성격이 거칠어 기씨에게 여러차례
모진 메질과 인두로 지지는 가혹한 행위를 자행한다.
황제 원 순제와 황후 '타나시리'는 정략결혼을 하였고
황후 '타나시리' 아버지는 황제 원 순제의 삼촌으로
원 순제 아버지 황제 문종을 죽인 사람이다.
아버지를 죽인 삼촌의 딸과 정략 결혼을 하였으니 황제 원 순제와 황후 타나시리의 사이는 좋을리가 없었다.
원 순제가 11살 어린나이에 고려 대청도에 유배를 온것도 타나시리의 아버지 즉 삼촌 때문인것이다.
순제를 모시면서 기씨의 천성이 총명해서 갈수록 총애를 받았다
< 원사후비열전 中 >
타나 시리와 바얀 후트그 (원 나라 황후들)
1335년에 원 나라 황실에 큰 정변이 일어나게 된다.
황후 타나실리 형제들이 황제 순제에 대해 모반(역적모의)을 일으켜으며,
타나시리 황후도 모반에 연류되어 사약을 받고 죽게되고, 황제 순제는 자신의 반대파 정적들을 제거하게된다.
원 순제는 제1 황후인 타나시리가 죽고난후 궁녀인 기씨(기황후)를 1황후에 앉히려 하지만,
몽고족의 풍습상 몽고족으로 황후족이 된다는것이 정해져 있기때문에 궁녀 기씨는 신하들의 반대로 황후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제2 황후 였던 '바얀 후트크'가 제1 황후 자리에 오르게 되며,
바얀 후트크 황후는 어진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기씨 황후가 되다
기씨(기황후)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견디며 좌절하지 않고 황제 순제의 아들을 낳게된다.
기씨는 아들을 낳은후, 고려 환관들은 기씨(기황후)를 황후로 책봉하기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중에는 기씨(기황후)와 고향이 같은 사람인 '박불화'도 있었으며, 고려 조정에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박불화는 고려인으로
황후 기씨와는 어렸을때
간은 고향에서 살았다
< 원사 환관전 中 >
1333년 공녀로 끌려와 원 나라 궁에서 차를 따르던 기씨는 원 나라의 제2 황후 자리에 오르게 된것이다.
기황후는 제 2황후 자리있으면서 막강한 세력을 키웠고,
환관 '박불화'에게도 큰 벼슬을 내리며, 고려인 환관들로 세력을 모았고,
고려에서 원 나라로 공녀로 오는것도 많이 줄어들게 된것이다.
기황후가 제2 황후자리에 25년이 지난후,
제1 황후인 '바얀 바투크'가 병환으로 죽게되며,
기황후가 제1 황후자리에 오르게 된다.
제 1 황후가 된 기황후는 병권까지 장악하면서자신이 낳은 아들 '아유르시리다르 빌릭투카안' 을 황태자로 옹립한다.
기황후가 몽골에 끼친 영향 (고려양)
기황후는 황후가 되면서 자신의 세력도 키웠지만,
원 나라 궁궐의 의상까지도 고려인의 것으로 많이 영향을 끼치게된다.
고려인이 동녀, 환관들이 원 나라로 많이 건너갔기 때문에,
고려의 의상, 음식등 문화 많으것이 원 나라로 전해졌다고 한다.
몽고족 원라에서는 의복의 상 하위가 구분되지 않았는데
고려인 옷차림 처럼 상 하의가 나누어져 있는것을 중국 역사 책에서 볼수있으며,
그러한 옷을 입은 흙인형도 무덤에서 출토되기도 했었다.
또한 몽골의 울란바트로 수도 박물관에서는 인두가 전시되어있다.
즉 인두는 고려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박물관 에서도 "원 나라 기황후때 부터 고려인이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병, 고려다식, 고려조청등 으로 불리며,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을 '고려양' 또는 '고려국양'으로 부리면서 원 나라 곳곳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원 나라와 기황후
몽고족인 원 나라는 '베이징'을 수도로 정하고 '대도'라고 칭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제1 황후였던 기황후는 미모가 빼어나고 매우 똑똑하고 총명하였다고 한다.
시간이 나는 뜸뜸히 책을읽고, 역대 황후들의 좋은 덕행을 본 받았으며,
좋은 물건이나 음식이 생기면 태묘에 먼저 재를 올리고 먹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기황후는 여호경과 각종 사서를 읽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진상품들은 태묘에 재례를 지낸후 먹었다
< 원사 후비열전 中 >
그 당시 원 나라 황제 순제는 방탕한 생활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고,
원 나라는 여러 지역에서 민중의 반란이 일어나 사회가 혼란에 빠져있었다.
기황후는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탁원한 인물들을 발탁해서 적재 적소에 분배해 앉히며 그들을 키우는데 탁월함을 보였다고 한다.
기황후는 원 나라가 흉년으로 기근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어죽어, 시체가 나 뒹굴자,
기황후는 황후의 내탕금을 관리하는 '자정원'에서 돈을 풀어, 나 뒹구는 시체들을 다 처리해 주었다고 한다.
기황후는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죽을 쒀서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하고 돈과 식량 옷감등을
나누어 주게 하였다.
< 원사 후비열전 中 >
원나라의 멸망과 기황후
원 나라는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줄어들지 않아 손을 쓸수없는 지경에 빠지게 되며,
그 예가 '홍건적의 난'이다.
홍건적은 '한족'이 뭉쳐서 만든세력이 반란을 일으키고,
명나라 '주원장'이 원 나라 수도 대도(베이징)을 향해 처들어오자,
1368년 7월 원 나라는 몽고 초원 북원으로 도피 하게된다.
1년 6개월간의 도피끝에 몽골 초원 '카라 쿠롬'(북원)(원 나라가 멸망하고 세운나라 )에 청착한 뒤,
원 나라 황제였던 순제는 기황후의 아들인 황태자 '아류르시리다라 빌레그트 카안'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아류르시리다라'는 원나라가 멸망하고 몽골 초원 북원의 2대 황제 소종이다.)
대형제국 원 나라는 아주 작은 소국 북원 으로 전략하게 된다것이다.
1370년 1월 2일
순제는 몸이 불편하여 황태자에게
나라일에 관한 모든일을 이임함
< 북순사기 >
(기황후의 아들 '아유르시리다라 빌레그트 칸'은 고려인 권씨와 결혼하였으나 소생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원 순제도 사망(1370년)하게 되고, 2년후 기황후도 사망하지만 그이후 기록은 전혀없다고한다.
기황후의 무덤
명나라 주원장은 원 나라를 점령한뒤, 원 나라의 수도였던 대도(베이징)의 궁궐터는 땅을 파서 호수로 만들어 버리고 대 원나라 제국의 모든것을 깡그리 지워버린다.
(그래서 중국에는 원 나라의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기황후의 무덤의 터가 경기도 연천에 있다.
어떻게 해서 기황후가 고려에 와서 장사 지냈는지는 조선의 <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남아있다.
연천군 동북쪽 15리에
원 순제 기황후의 묘와 석인 석양 식물들이 있다
< 동국여지승람 中 >
▶기황후가 원 나라 황후로 있을때 고려에 있는 친정 오빠들은 고려 조정일에 간섭을 하고 양민을 괴롭혀 많은 부를 축척하였다고 한다.
특히 기황후의 둘째 오빠 '기철'의 행포가 더욱더 심했다고 고려사에서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고려 왕권이 공민왕으로 넘어오자 공민왕은 연회를 열어 '기철'을 불러 들인후 살해하였다고 한다.
▶명 나라 주원장이 원 나라로 쳐들어오자 기황후는 자신의 친정 고려에 병력을 요구하였으나, 공민왕은 이를 거절하였다.
이러한 것이, 기황후의 오빠들의 횡포때문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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