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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의 후궁과 아버지의 첩을 겁탈한 고려 충혜왕 (ft. 충숙왕, 원나라)

행복한글쓴이 2024. 5. 13.

 

고려 제28대 충혜왕

충혜왕의 어린시절

고려 27대 충숙왕과 명덕태후 홍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1315년 2월 22일에 출생하였다. 그때가 아버지 충숙왕이 왕위에 오른지 2년 되던 해였다.

 

충혜왕의 휘(이름)은 왕 정이고, 몽골식 이름은 부다시리였다.

 

충혜왕(정)은 어려서 부터 말썽 꾸러기로, 절 지붕위에 새를 잡는다며 절에 불을 지르고 도망가기도 하였고, 어린 나이에도 술을 즐기며 불량배들과 어울려 여자들을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러, 아버지 충숙왕이 "너는 왜 망나니 같은 행실만 하느냐"라고 크게 꾸짖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왕정(충혜왕) 원나라로 가다

그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충숙왕의 큰 아들이자 세자인 왕정(충혜왕)은, 충숙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기 이전에 원나라로 건너가, 원나라 황실에 대한 충성을 보이며 또한 원나라 권력자들과 교류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다음 대에 고려 왕이 될수있었다.

 

왕정(충혜왕)은 1328년 2월(충숙왕 15년) 고려의 세자의 신분으로 원나라로 가, 원나라 수도 대도에서 황제의 숙위(황제를 호위)를 담당하게 된다.

 

왕정(충혜왕)은 원나라 황제의 숙위를 담당하면서, 그당시 원나라의 권력자인 엘 테무르와 가깝게 지내면서 사냥과 술을 즐기며 엘 테무르의 총애를 받게 된다.

 

 

왕정(충혜왕) 왕이 되다

1329년 충숙왕은 원나라와 정치적으로 복잡한 관계에 얽히어, 아프다는 핑계로 아들 왕정이 15살 되던해에 양위할 뜻을 내 비치자, 이듬해 2월에 왕정은 원나라의 허락을 받아 고려 제28대왕 충혜왕에 임명되었다.(1330년)

 

그리고 충혜왕으로 임명된 한달뒤, 원나라 진서무정왕 초팔의 맏딸인 덕녕공주와 결혼을 하여, 한동안 원나라에 머물다 6개월이 지난뒤 고려로 돌아와 고려 충혜왕의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충혜왕의 아내 덕녕공주의 아버지 진서무정왕 초팔은, 원나라 황실내에서 비교적 낮은 작위의 제왕이었으나, 여러대에 걸쳐 반란을 진압하여 그 공으로 수대에 걸쳐 황제들에게 신임을 얻었다.

 

덕영공주는 원 세조 쿠빌라이칸의 고 손녀이다.

 

 

 

충혜왕 아버지 충숙왕에게 호례

왕으로 임명된 충혜왕은 즉위식을 하기위해 고려로 오던 중이었고, 아버지 충숙왕은 원나라로 가던중 부자가 황주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는데, 아들 충혜왕이 아버지 충숙왕에게 호례(유목민 인사법)로 인사를 하자, 아버지 충숙왕은 아들 충혜와에게 "네 아비와 어미가 고려 사람인데 어찌 호례를 행하느냐, 또 옷은 왜 그리 사치스러우냐"라고 크게 꾸짖자, 아들 충혜왕은 서슬퍼런 아버지 충숙왕을 보고 울며 물러났다고 한다.

 

고려 27대 충숙왕의 아내(명덕태후 홍씨)는 원나라 출신으로 순혈 고려인이 아니었기에, 명덕태후 낳은 아들 충혜왕이 하는 짓이 다 못 마땅가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고려 제28대 충숙왕
고려 27대 충숙왕 (드라마 이미지)

 

충혜왕 왕위에서 쫒겨나다.

왕이 된 충혜왕은 정치 보다는 놀고 마시고 사냥을 하는 것에 빠져있어 왕위가 위태롭게 된다.

 

한편 어쩔수 없이 아들 충혜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원나라에 머물고 있는 충숙왕은, 다시 고려 왕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사촌 아우 심야왕 왕고의 세력들을 포섭한다.

 

그리고는 충숙왕은, 원나라의 황위 계승권자인 토곤테무르(훗날 원나라 황제 혜종, 기황후의 남편)가 고려 대청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것을, 충혜왕이 원나라 황제로 옹립하고자 하는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고, 현재 원나라 황제에게 무고한 것이다.

 

즉, 아버지 충숙왕이 고려 왕위를 빼앗기 위해 아들 충혜왕을 음해한 것이다.

 

이로 인해 충혜왕은 왕위에 오른지 2년만에 쫒겨나 다시 원나라로가 황제의 숙위를 담당하게 되며, 아버지 충숙왕은 고려로 돌아와 다시 왕위에 복위하게 된다.(1332년)

 

이후 원나라는 토고테무르가 황제가 되고,  바얀이 집권하게 되면서 상황이 급진전 하게 되어, 원나라에서 황제의 숙위를 담당하면서 위그르족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악행을 일삼는다며, 바얀은 충혜왕을 아버지 충숙왕이 있는 고려로 돌려 보내버린다.

 

1336년 고려로 돌아온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으로 부터 냉대를 받았으나, 아버지 충숙왕이 복위 8년만에 병으로 사망하게 되자, 충혜왕은 다시 고려 왕으로 복위한다.(1339년)

 

 

충혜왕의 만행과 폭정

복위된 충혜왕은 여전히 주색을 밝히며 온갖 폭정과 만행을 저지르며 정치와 민생은 안중에 없어, 신하들이 간청하였으나 소용이 없자 신하들과의 갈등은 매우 심해졌다.

 

고려사는 충혜왕을,

1339년 5월, 왕이 삼사조사 홍융(숙부)의 계실 황씨를 간음 하였다.

1339년 5월 왕이 서모인 수비 권씨와 정을 통했다.

1339년 5월 환관 유성의 처 인씨가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충혜왕은, 구천우 강윤충을 거느리고 환관 유성의 집에가서 유성에게 술을 달라고 하여 놓고, 유성의 처를 꾀어 내는데 있는 줄도 모르는 신하들은 유성을 비웃었다.

1339년 경화공주가 충혜왕을 초대해 잔치를 열었는데, 충혜왕은 술이 취한척하고 궁궐로 돌아가지 않고 경혜공주의 침실로 들어가 강간하려 하자, 경혜공주가 발버둥 치자 아랫 사람을 시켜 경혜공주의 사지를 묶어 놓고 강간하였다고 한다.

1340년 3월 예천군 권한고의 둘째 처 강씨가 미인 이라는 소문을 듣고, 호군 박이라적을 보내 궁중으로 데려오게 하였는데, 호군 박이라적이 먼저 강씨를 간통한 사실을 알고 이라적과 강씨를 때려죽였다.

1340년 8월 사냥을 하던 충혜왕은 겨울이 되자, 내시 전자유의 집에가서 그의 처를 강간하였고, 또한 때려 죽인 박이라적의 첩과 강간하였고, 재상 배전의 집에서 그의 처와 그의 아우 금오의 처를 번갈아 간음하였다.

 

그외에도 충혜왕은 막무가내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다 못해 아버지 충숙왕의 후처들도 강간을 하였다고 한다.

 

"고려 충혜왕은 주색을 즐겼으며, 놀이와 사냥에 탐닉해 화음무도했다. 남의 처나 첩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친소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모두 후궁으로 들여 그 수가 백명이 넘었다"

 

"신하가 왕에게 직언하는 자는 모두 죽였다"라고 고려사에 전해진다.

(조선의 폭군 연산군보다 더 한 만행과 폭정을 저질렀다고 한다)

 

 

 

충혜왕 조적의 난

경혜공주가 충혜왕에게 강간을 당하고 난 다음, 원나라로 돌아가려고 말을 구하려 했지만 충혜왕이 그것을 막아 원나라로 돌아가지 못하자, 경혜공주는 심양파 조적에게 자신이 충혜왕에게 강간 당한일을 말하였다.

 

경혜공주가 충혜왕에게 강간 당한 말을 들은 심양파 조적은, 충혜왕을 몰아내개 위하여 궁궐에서 군사를 일으켜 전투를 벌였다. 이것이 고려 조적의 난이다.

 

그러나 1000명에 불과 했던 조적의 군사는 충혜왕의 군사에 패하고, 조적은 경혜공주 집에 숨어있다 발견되어 죽음을 당하였고 경혜공주는 유폐를 당하였다.

 

유폐당한 경혜공주는, 원나라에서 충혜왕의 복위를 인정하러 국새를 가지고 온 두린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였고, 원나라에소 온 두린은 충혜왕을 체포에 원나라로 압송하여 원나라 형조에 투옥시켰다.

 

 

충혜왕 2번째 복위

충혜왕은 원나라의 집권세력이 또다시 바뀌자 충혜왕은 다시 고려로 돌아와 왕으로 복위하나 얼마 가지를 못하였다.

 

복위한 충혜왕은 백성과 정치는 아랑곳없이 여기 저기 패악질을 저지르자, 원나라에서는 충혜왕을 더이상 두고보지 않고  고려 출신인 환관 고용보를 고려로 보내, 충혜왕을 체포하여 다시 원나라로 압송해 간다.

 

원나라로 압송해가는 과정에서 충혜왕은 구타를 당해도, 어느 신하 한명 나서서 충혜왕을 도와 주지 않았다고 한다.

 

원나라 혜종(기황후 남편)은 충혜왕에게 "너 왕정은 왕이 되었음에도 백성들을 심하게 착취하였고 너의 피를 천하의 개들에게 먹인다고 해도 오히려 부족하다. 그러나 짐은 살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너를 귀향을 보낸다"라고 하며, 지금의 중국 광동성 조주라는 곳으로 유배를 보내기로 하였다.

 

광동성 조수는 그 당시에 아주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는 유배지로, 충혜왕은 머나먼 유배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악양현(후난시 웨양 시)에서 1344년 (음력 1월 15일)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때 충혜왕의 나이는 30세 였다.

 

고려 충혜왕 묘 영릉

 

■야사에서는 충혜왕이 독이 든 물을 마셨다? 또 귤을 먹다 체해서 죽었다.라는 설도 있으나, 충혜왕이 죽었다는 것을 고려에 전해지자 백성들은 만세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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