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Poem)

황지우 - 늙어가는 아내에게

행복한글쓴이 2023. 7. 27.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아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 부터 14년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 오래 그냥, 보게 하는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날 몇 밤을 잠 못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의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깨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매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괮찮았지?

라고 말할수 있을때 그 때나 가서

할수 있는 말일거야.

 

 

 

 

 

 

 

 

 

황지우 프로필

본명 황재우

출생 = 1952년 1월 25일 (71세)

고향 =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신원리 배다리마을

 

본관 = 창원 황씨

 

학력

광주중앙국민학교 (졸업0

광주서중학교 (졸업)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제적)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 / 석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 / 박사 과정수료)

 

황지우는 대한민국 시인이자 교수이다.

대표작으로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뼈아픈 후회' '나는 너다'등 이 있다.

 

황지우 시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뒤 쓰여진 추모시 중 유명한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깐 멈추시라'를 거서뒤 일주일만에 써 경향신문에 기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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