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남(1942년 ~ )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독일 브레멘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오길남 박사가
왜 북한으로 가게되고 탈북을 한 과정을 포승팅 하겠습니다.
오길남과 신숙자
독일에서 공부하던중 파독 간호사를 하고있던 신숙자를 만나
만난지 6개월 만에 1972년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4년만에 첫딸(혜원 을 낳고 2년후에 둘째 딸(규원)을 낳게된다.
오길남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독일로 정치적 망명을 하게된다.
망명을 결정한 오길남은 더욱더 공부에 매진하여 브레멘 대학교에서
15년에 걸려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1985년 오길남 43세)하게 된다.
오길남은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으나 대학교 강단에 서기가 어려웠고
아내마저 환자를 투석해주다가 감염이 되어 아픈상태로 교통사고 까지
나 생활이 이만 저만 어려운게 아니었다.
오길남 박사 북한 공작원에 포섭
북한 공작원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오길남 박사가
형편이 어렵다는걸 알고 접근한다.
북한 공작원은 오길남 박사에게 북한으로 오면
경제학의 대가로서 대학에서 교수도 하면서
나라의 큰 사람이 될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부인 신숙자도 북한 최고 병원에서 무료료 치료를 해줄수 있다며
북한으로 올것을 종용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미국은 학비가 비싸 독일으로 유학을 많이 갔었다]
오길남은 부인 신숙자에게 북한으로 가자는 말을 하였고
신숙자는 노발대발 하며 북한으로 안가겠다며
차라리 갈려면 혼자(오길남)서 가라고 한다.
이에 오길남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않고
가족 모두가 북한으로 가기로 결정을 한다.
그때 신숙자는 남편 오길남에게
"당신의 결정이 훗날 큰 불행이 될겁니다"라고 하였단다.
북한에 도착한 오길남 박사 가족
오길남 박사는 북한에서 교수와 자신의 꿈을 펼칠수 있다는 생각으로
꿈에 부풀어 서독에서 책 3천권을 사가지고 북한으로 가게된다.
오길남 박사 가족은 서독을 떠나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눈보라가 치는
북한 순안 공항에 도착하자 아내 신숙자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시간이 흐른뒤 오길남 박사는 아내 신숙자에게 순안 공황에서
왜 울었느냐고 물으니?
신숙자는
"우리는 반긴다며 꽃다발을 주는 아이들이 너무 말라
나중에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될것같아 울었다" 라고 하였다고 한다.
오길남 박사 가족 정신교육
오길남 박사 가족이 도착 하자마자 김일성 사진을 보고 절을 하라고해서
오길남은 그때서야 뭔가가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곤 매일 두시간씩 북한 선전영화를 보고
혁명유적지를 답사를 하며 3개월간의 정신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신숙자는 남편 오길남에게
"당신은 당신 손으로 당신눈만 찌른게 아니고 우리 눈까지 찌르네요
사회주의자는 진실이 없고 음흉하기만 보인다"라고 남편 오길남에게 쏘아붙였다고 한다.
오길남 박사 탈북
북한에서는 오길남 박사를 '민영훈'이란 가명을 주며,
1986년 6월 칠보산 연락소내 구국의 소리라는 대남 방송요원으로 일하게 된다.
오길남 박사는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처절히 후회해 보았지만
돌이킬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중 북한 당국이 오길남 박사에게 서독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한민국 학생 두명을 납치해 오라는 지령을 받게된다.
오길남은 이때라고 생각하고 탈출을 하려고 생각하는데,
북한 당국은 오길남 박사가 서독으로 공작을 수행하러 가는동안
처 자식은 못 데려간다고 한다.
오길남 박사는 아내 신숙자에게 자신이 서독에서 지령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겠다고 하자,
신숙자는 남편 오길남 박사의 멱살을 잡으며,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이예요
북한 공작원 일을하는 아버지로 남고 싶어요?
도망치세요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요.
그래도 죽인다면 죽으면 그만이지
다시 한번 부탁해요
정의를 사랑하는 순결 무고한 젊은이들이 재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도망쳐서 우리를 꺼내려고 노력을 해달라"
그래도 안되면 우리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하라"고 했다고 한다.
오길남은 아내 신숙자의 조언대로 하기로 하고
서독에 도착한후 피신하여 있다가
서독정부의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먹는다.
오길남 박사 탈출
오길남 박사는 북한당국의 두명의 공작원과 같이
북한을 출발하여 동베를린에 도착하여 탈출계획을 세우고
코벤하겐으로 가는 입국 심사대에서 공작원 두명이 먼저 나가고
뒤에 나오는 오길남 박사는 미리 'Help me', 'Hife' 라고 써 놓은 쪽지를
자신의 박사학위 사본에 끼워 여권과 같이 입국 심사대 직원에게
내밀게 된다.
입국 심사를 보는 관계자는
오길남 박사가 도움을 요청하는걸 직감하고
빠르게 피신시켜준다.
탈출에 성공한 오길남 박사
오길남 박사는 탈출에 성공하여
자신이 남한으로만 가지 않는다면
북한당국에서 자신의 가족을 풀어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오길남은 북한대사관에 미안하다는 사과문과
가족을 돌려 달라는 타원서를 5년간 보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탈북한지 5년만(1987,1988년)에 북한에 있는 아내로 부터 편지를 받는데
"돌아오라"는 편지였다.
그리고 오길남 박사는 1991년 북한으로 부터 가족사진과 카섿트 테이프를 받게된다.
그 테이프 안에는 아이들의 유성이 담겨 있었다.
"아빠 나는 혜원이예요
몇칠전 아버지와 함께 생일을 즐겁게 보내는 꿈을 꾸었어요
저에게도 훌륭한 아버지가 계신데 아버지 사랑이 그립습니다"
너무 오랫간만에 아빠라고 소리내어 부르니 울음이 납니다" (첫쨌딸)
"아빠 나는 규원이에요
나는 중학교 2학녀이 되었어요
그리고 열 두살이 되었어요
보고싶어요 아빠
아버지는 알지 않아요
내가 빨리 커야 어머니 일도 덜어드리는데 안타까워요
그러니 이제 물도긷고 나무도 잘 듭니다.
보고 싶어요 아빠"(둘쨋 딸)라며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받았다고 한다.
[탈북민의 증언에 따름면 오길남 박사의 아내와 아이들이 사진을 찍은곳은 요덕수용소라고 한다]
오길남 박사 북한당국에 요청
오길남 박사는 북한에 내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테니
우리 가족을 독일로 내 보내 달라고 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오길남 박사는 대한민국으로 들어와 자수를 하고
생활을 하면서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올수있는
갖은 노력을 여러 단체와 해외에서 다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또한 오길남 박사는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오길남 박사는 대한미국에서 국가안보 전략연구소에서 근무하였다]
오길남 박사는 현재 82의 나이로 요양원에서 지내며
오길남 박사의 현재 기억은 서독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든 그때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을 탈북한 탈북민들이 전하기를
북한 요덕수용소에서 오길남의 가족을 보았다는 증언이 많았다.
오길남 박사 이야기를 <출국>이라는 제목을 영화가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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